자유게시판

[출판기념 및 신간 안내]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김겸 지음

1,006 2018.07.16 06:42

짧은주소

본문

09fdef8e385ca06bf38888083e6e04b7_1531686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김겸 지음. 문학동네.

 

 

저자 김겸의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를 읽고 있으면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인지와 서술 이면에 삶을 대하는 품성이 내재된 '사람다움'이 느껴집니다.

 

저자가 전하는 담담한 메시지 안에는 살아온 날들을 형성해 온 특유의 섬세함이 있습니다.

그 섬세함은 타성에 젖지 않으려는 의지이며

보이지 않는 것, 가려진 의미마저 간과하지 않는 진지함이며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자 용기입니다.

그랬기에 결과에 대한 보람만큼이나 과정은 아프고 지난한 긴장의 연속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8기 학부모로서 나누었던 몇 번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겸손하면서도 정직하게 자신의 유약함을 고백하는 저자의 성품을 보아왔는데,

그것이 자타가 인정하는 보존복원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던 강력한 연유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예민함은 너그럽지 못함의 반대가 아니라 모든 운용을 아우르는 가능성이며,

집요함은 결과를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승화작용이며,

섬세함은 사물과 대상, 시간과 공간, 자아와 타인을 연결하고 재활하는 창조의 기반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이러한 발견을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

 

마침 시작된 여름방학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신간을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 또한 방학에 접어들면서 여유를 갖고 보려 했는데, 추천글을 올려달라는 동기 학부모의 제안 말씀에

서둘러 책을 읽고 두서 없이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게 이번 독서가 새로울 수 있었던 건 저자를 알고 읽을 수 있는 독서의 기회가 흔치 않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평소와 다른 독서의 질감과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따스함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타인을 통해 삶을 반추해보는 어른들에게

작은 위로와 함께 삶을 관철하는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여하튼 소감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기로 하고요, 몇 군데 인상적이었던 문구를 옮기며 소개글 마무리하겠습니다.

 

........................................................

 

 

 수건으로 코와 입을 꽉 둘러묶고 교문을 나선 그날, 역시 우리와 같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인 전경과 눈앞에서 대치하는

상황까지 갔고, 그 친구가 허리춤에서 사과탄이라고 불이는 까맣고 동그란 최루탄을 뽑아 던지는 순간 뒤돌아 홍익대

언덕 끝 와우관 로비까지 달려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거기 주저앉아 눈물, 콧물을 닦으며 숨을 고르고 있었고, 곁에 있던 친구로부터

"겸아! 너 등에서 피가 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등 아래쪽에서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중략)

한 달이 1년 같았던 6월은 29일 승리의 함성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우리는 신촌 어느 주점에서도 더이상 이한열을 마주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내 머릿속 1987년 6월은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갔고 27년 후 터널 끝에서 한 줄기 빛이 그의 운동화를 비추고 있었다.

-007쪽

보존 분야에서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임상경험을 한 이는 드물지 않을까 싶을 만큼 수많은 임상 경험을 거치며 다양한 '환자'를 만났다.

그중 몇몇 환자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나를 만나고 건강해져서 돌아간 환자, 생소한 병명으로 나를 떨리게 한 환자, 그리고

어딘지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간 환자...... 그들이 가끔 생각나고 또 생각난다.

-067쪽

 

 

 

 

간혹 복원이 마무리되었을 때의 소회를 내게 묻곤 하는데, 이한열의 운동화를 비롯해 힘든 작품일수록 작업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상념의 터널을 지나야 하기에, 정작 작업이 끝난 후에는 아무런 마음의 잔상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난히 어깨를 짓눌렀던 운동화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078쪽

 

 

 

 

작품이나 유물이 손상되면 소장자나 관계자도 함께 사색이 되거나 심적인 고충을 겪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적절한 의사를 만나

작품이 건강을 되찾으면 의뢰인도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 얼굴이 환해진다. 그 순간은 참으로 보람이 크다. 추억도, 이야기도,

마음도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래서 금전적 가치와 상관없이 자신의 이야기나 추억 혹은 신념이 담긴 애장품은 소중하다.

그런 애장품이 다치면 작은 손상이어도 마음에 큰 상처가 된다. 정서와 기억이 새겨진 물질은 돈이 있다고 다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문득 온기를 전해주는 물건을 복원하는 일은 그래서 뿌듯하다.

-084쪽

 

 

 

 

유물은 오래 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물건이다. 과거이자 기억이며 스스로 증언하는 '말 없는 외침'이다. 그 외침은 과거 인간이

주변 환경에 반응한 방식이며 그중 예술작품은 마음과 정서로 반응한 기록이다. 글로 쓴 역사는 사실과 정보를 기록한 것이지만

예술작품은 과거 우리 '마음의 기록'인 것이다. 그래서 유물을 마주하는 일은 과거 누군가의 마음을 만나는 일이다.

-186쪽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두렵고 피하고 싶은 부조리함이 바로 인간 실존의 모습이며, 이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결과물의 정수가

예술작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않는 사회는 어쩌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외면하는 사회가 아닐까?

(중략)

예술 덕분에 우리는 인간과 인간의 역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바탕 위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2쪽

 

 

 

 

결국 문화유산이 간직한 가장 큰 가치는 그들이 살아왔고,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 속에 있지 않을까.

유적지나 박물관, 미술관의 전시물로 존재하는 문화유산은 말이 없다. 하지만 유물은 지금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몸에 새긴 채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의 후손은 이렇게 새겨진 흔적을 통해 21세기 한국을 읽어내리라.

-200쪽

 

 

 

 

복원이라는 과정은 하나밖에 없는 유물을 다루는 일이므로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거울로서 동경의 기능을 되살리고 싶다고

출토된 유물의 표면을 갈아낼 수는 없다. 복제품을 만들어 본래의 쓰임새를 복원해낼 수는 있다. 즉, 오리지널 유물은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안정화시켜 보존하고 복제품은 연구 및 교육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혹은 유물이 극히 불안정한

상태거나 안정화가 불가능할 때는 복제품을 제작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202쪽 

 

 

 

 

어떠한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재미있어서 했던 어렸을 적 놀이가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손끝에 익혀온 감각이, 물건을 보거나 손에 넣으면 그 내부가 궁금하고 결국엔

열어보던 습성이 지금 내 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나는 인생의 우연성을 사랑한다. 너무 애쓰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가만히 마음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삶은 이어진다는 막연한 믿음을 갇고 있다. (중략)

-258쪽

 

 

 

 

 


 

댓글목록

우경아님의 댓글

우와~ 멋지네요.
8기 윤지도 벌써 두 번 읽었다고 해서 감동 받았는데, 은영씨 서평도 정말 훌륭하네요. 고맙습니다. 저희 손으로 차마 알리긴 부끄러운 일인데...ㅠㅠ 부족하나마,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장은영님의 댓글

제비꽃께도 축하드립니다.
책을 좋아하는 윤지가 두 번이나 읽었다고 했을 때 윤지의 독서력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직접 펼쳐보니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옆에서 이야기하듯 편안하고 담백하면서도 세심한 마음까지 보여주신 진솔한 글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은경님의 댓글

저자를 알고 읽을 수 있는 독서의 기회. 
그 흔하지 않은 경험이 기대됩니다.

장은영님의 댓글

정연맘, 소식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더 쉽고 간결하게 풀어내지 못해 저자의 의도를 잘 전달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덕분에 늑장 부리지 않고 잽싸게 독서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는 여유를 가지려 해요..

이철국님의 댓글

와,  덕분에 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 듭니다 ^^
......
예인아빠 - 첫 작품 축하합니다 ~~

Total 649건 7 페이지
제목
고양청소년협동조합 아이디로 검색 2019.10.17 1,389
송윤서 아이디로 검색 2019.10.17 1,032
이한결 아이디로 검색 2019.10.15 1,408
고양청소년협동조합 아이디로 검색 2019.10.12 1,027
고양청소년협동조합 아이디로 검색 2019.10.08 1,355
고양청소년협동조합 아이디로 검색 2019.09.25 1,086
고양청소년협동조합 아이디로 검색 2019.09.25 1,297
고양청소년협동조합 아이디로 검색 2019.09.25 974
원현민 아이디로 검색 2019.09.24 817
윤완수 아이디로 검색 2019.09.24 867
정진아 아이디로 검색 2019.09.20 1,303
김현지 아이디로 검색 2019.09.18 1,020
고양청소년협동조합 아이디로 검색 2019.09.10 1,208
정진아 아이디로 검색 2019.09.02 1,070
갈무리 아이디로 검색 2019.08.28 1,200
월간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