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배움터이야기

도보여행 후기 - 꽃침맞고 온 날

1,043 2016.04.2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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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사는 시인 함민복은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함민복 봄꽃’)”이라고 했다. 이 봄에 꽃침맞고 왔다.

여행을 가지 않았으면 친해지기 어려웠던 아이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고 왔다. 불이학교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느낌이다. 훌륭한 모둠원들과 함께 했고, 캠핑과 도보여행이라는 그리 편안하지 않은 여행 환경이 준 선물을 받았다.

 

우리 모둠의 도보여행은, 험난한 마니산 등산로가 있었고 산과 바다를 지나는 꽤 긴 거리가 있었다. 길을 걷고 난 다음에는 텐트를 치고 걷는 일을 했다. 정돈 되지 않은 곳에서 요리와 설거지를 했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는 날은 춥고 비까지 왔다. 이런 환경을 만나다보니 우리 모둠원들은 힘듦을 서로에게 쏟아내기 보다는, 협력하여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행 둘째 날, 하루 걷는 길을 마치고 씻고 저녁준비를 하면서 석양을 보고 있으니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이게 우리 모둠의 분위기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조별 여행 마지막 날, 여행에 대해서 한 마디씩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나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는 못했지만, 그 이후로 생각을 해보았다. 참 편한 여행이었다. 해주는 밥을 잘 먹었으며, 설치해놓은 텐트에서 잘 잤다. 아이들이 안내하는 길을 잘 따라갔다. 이런 여행을 만들어 준 아이들의 훌륭한 모습을 나는 눈에 꼭 꼭 담아 기억하고 있다. 내리는 빗소리를 반길 줄 아는 모습과 바다의 변화하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 산과 바다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모습을 기억한다. 다른 아이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밥을 하고, 밥을 먹고 난 다음 뒷정리를 묵묵히 하는 모습도 기억한다. 길을 걷다 힘들면 상대방의 짐을 들어주는 모습,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고맙다고 다시 돌려주는 모습도 기억한다. 긴 거리를 묵묵히 걷고, 마지막엔 활짝 웃던 모습도 기억한다. 이 모습을 다 보았기에 훌륭하다고 느낀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어려움도 있다. 먹거리다. 건강한 먹거리를 먹자고 여행 전에 모둠원들에게 공지했다. 그러나 여행 전 화정역 광장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수X칩을 먹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고 모둠시간에 어떤 아이가 이야기 했다. 그날은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생각해보니 앎과 삶의 불일치한 모습이 느껴져 다음 모둠모임에서 여행만이라도 노력하자고 다시 이야기하였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간식을 사러갔었다. 간식을 고르면서 성분을 보았는데 하나같이 ‘GMO'가 들어가 있었다. 호들갑 떤다고 할 수 있지만,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제쳐두고서 안전을 담보하지 않은 간식을 고르는 것이 너무 불편하여 최대한 건강한 간식꺼리를 사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우린 흔히 ’GMO'가 든 먹거리에 익숙해져 있고, 예산의 한계로 인해서 실제 진행에서 참 어려웠다. 결과만 이야기해보자면, 나의 개인적 생활과 비교해보면 평상시보다 'GMO'가 든 먹거리를 훨씬 많이 먹었다. 여행도중에는 나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배고픔과 욕구 해소 등의 필요성을 느껴서 허용한 측면이 있지만, 안전한 먹거리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풀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해결책이 있다면 듣고도 싶다.

 

마지막으로 듣건데 이렇게 전체적으로 도보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시도를 한 학교에게, 교사들에게,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냈음에 축하하고 싶다. 더불어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나에게도 축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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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밥풀님의 댓글

여행이  맑은 풍경과 걷기의 건강함만을 가져다 주는게 아니군요.
홀로 여행이 아닌 팀 여행이 주는 맛이 또 여기에 있군요.
서로를 돌아보는 모습으로 배워가며 애들도 한뼘 커가는 계기가 되었겠네요.
감사합니다.

7기양가은모노래님의 댓글

꽃침맞고 오신 생강샘의 화사한 기운이 불이학교에서도 활짝 피어나겠네요.^^
멋진 후기 감동입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바라봐주는 불이샘들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잘 자라주는 게 아닐까요?
도보여행을 사고없이 모두 건강하게 잘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과 선생님들께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늘 고맙습니다.

하니☆님의 댓글

한 장의 사진도 놓칠 수 없다며 모꼬지 도보여행 발표에서 보여준 "생강차" 팀 도보여행사진을 보면서 아이들이 많이 크겠구나 싶더라구요~

편안함 대신 자연과 함께하며 보낸 시간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기를...^^

함민복은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함민복 ‘봄꽃’)"
시 구절이 참 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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