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배움터이야기

평화여행 두번째 이야기

1,301 2018.10.0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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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할머니와 럽아저씨를 만나고 오는 길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부상을 당하신 베트남분을 두 분 만나 뵈었습니다. 월남전에 한국군은 백마, 청룡, 맹호 세 부대를 파병했는데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습니다

- 쯔엉티투 할머니 이야기
꽝남성 하미마을에 살던  투할머니에게는 7살, 5살, 3살의 어린 자녀들이 있었다. 1968년 1월 24일 아침 한국군들이 마을에 들어와 마을 주민들을 세 곳을으로 모이라고 했다.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잘 해 주기도 해서 아무 의심없이 할머니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그 곳으로 갔다. 마을 남자들은 대부분 전쟁을 피해 다른 곳에 숨거나 도망을 가서 마을에는 여자, 아이, 노인들 뿐이었다고 한다. 한국군은 모인 사람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고 집에 불을 질렀다. 투할머니는 불 속에서 가장 어린 아이만 데리고 도망을 나왔다고 한다. 이미 위의 두 아이는 숨진 뒤엤고 막내도 다리를 다쳤다고 한다. 도망을 나와서야 할머니는 자신의 발 하나가 없어진 걸 알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한 발로 평생을 사셌다. 올해로 80이 되셨다.

-팜티호아 할머니와 럽 아저씨 이야기
럽아저씨는 꽝남성 하미마을에 살았지만 어머니인 팜티호아 할머니가 큰 남자아이는 베트콩으로 오해받아 죽을까봐 멀리 친척집으로 보내서 학살 당시에 하미 마을에 있지는 않았다. 팜티호아 할머니도 쯔엉티투 할머니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두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팜티호아할머니는 학살 피해 생존자 가운데 제일 고령이셨는데 몇넌 전 돌아가셨다.
럽아저씨는 두 다리를 잃은 어머니를 평생 보살피셨다. 럽아저씨는 전쟁이 끝난 몇넌 뒤  밭을 갈다가 불발탄이 터져서 실명을 하셨다. 어머니와 아들이 모두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계셨던 것이다.

-하미마을 이야기
투할머니, 호할머니, 럽아저씨가 살던 하미마을은  마을주민 135명이 모두 같은 날 함께 죽었다. 그 가운데 여자가 7 0%이며 태어난지 채 1년도  안된 아기들이 3명이나 있었다. 그 아기들은 우리나라처럼 아명으로 불려서 제대로된 이름조차 없는 애기들이었다. 한국군들은 학살이 끝나고 불도저로 그 장소를 밀어버려서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했다.그렇게 한국군이 주둔했던 베트남 곳곳에 죄없는 민간인들의 죽음도 함께 있었다.

ㅡ불이학교 7기 이야기
정오에 다낭에 도착했다. 밥을 먹고 하얀 국화와 노란 국화를 사서 하미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커다랗게 지어진 위령비에 먼저 들러 짜노샘의 설명을 들었다. 중간 이름에 Ti 가 들어가면 여자 이름이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희생자가 여자였다. 출생연도가 표시 되어 있는데 갓난 아기부터 10살 이하의 아이들이 십여명이 넘었다. 설명을 다 듣고 향을 피우고 헌화를 했다.
쯔엉티투 할머니댁에 먼저 들렸다. 할머니는 온 몸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린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고, 긴 세월 힘드셨지만 이제는 용서했다고, 너희들이 사과하지 말라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덕담과 인사말을 해주셨다. 우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럽아저씨댁에들러 돌아가신 팜티호아 할머니께 향을 피워드렸다. 아저씨 얘기를 듣고 난 뒤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시겠다고 하셨다, 제목은 '올 봄엔 못가요' 라고 한다. 무척  슬픈 노래처럼 들린다,  노래를 끝낸 아저씨가 답가를 불러달라고 하셔서 고민하다 다같이 바위처럼을 불렀다. 춤을 춘 친구도 있었다, 아저씨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셨다, 뿌듯했다.
그 날은 숙소로 돌아와 너무 피곤해서 느낌 나누기를 못 했고 그 다음 날 느낌 나누기를 했다. 모든 친구들이 각자 자기 생각과 느낌을 잘 표현했다. 그 느낌을 놓치기 싫어서 적어 두었다. 자기 생각이 분명한 멋진 친구들이다

여기는 흔들리는 기차다. 우리는 지금 캄보디아로 넘어가고 있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글씨를 계속 쓰고 있다. 목이랑 손가락이 아프다. 그만 쓴다.
댓글목록

어진엄마님의 댓글

아픈 역사와 화해하는 불이7기의 걸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 불렀던 '바위처럼'
베트남 하미마을에 울려퍼진 ''바위처럼'
같은 노래 다른 입장이 울컥하네요.
역사에게 내미는 화해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신 하미마을 분들께 감사하고 불이7기와 선생님들의 용기있는 발걸음도 감동입니다.

7기양가은모노래님의 댓글

전쟁이 할키고 간 아픔을 함께 느끼고 다시는 그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 그 평화의 여정에 뜨거운 응원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토닥님의 댓글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나려던 차에 마지막 줄을 보고 빵 터졌네요.^^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7기 아이들과 샘들~ 계속 소식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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