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배움터이야기

평화여행 세 번째 이야기

1,121 2018.10.1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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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를  보고 듣고 느끼다

미리 공부해 온 내용은 아무 소용없었다. 200만명이 죽었다는 것도,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도, 인터넷이나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저 남의 나라에서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뚜얼슬럥 또는 뚜슬랭이라고 부르는 그 곳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뚜슬랭 박물관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입구에 커다란 비석에 그렇게 표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원래 고등학교 건물이었고 크메르루주군이 감옥 또는 고문하던 장소로 사용했다. 이 뚜슬랭에는 2만명 가까이 끌려왔고 살아서 나간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장소는 1976년부터 1978년 사이에 캄보디아 전체에 300곳이 넘었다고 한다.

끌려온 사람들은 폴포트 정권에 저항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사, 의사, 변호사, 외국인, 안경을 꼈다는 이유로, 손이 부드럽다는 이유로  정말 다양했다. 그들은 있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라고 고문 받았고,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면 죄의  댓가로 처형을 당했다.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덕분에 모든 장소에서 한국어 오디오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아이들의 진지한 태도가 위안이 되었다.

뚜슬랭에서 죄를 자백한 사람들은 청에크라는 곳으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지금은 청아익 학살센터라 불리며 주변 유골을 모아 큰 위령탑을 세워 두었다.지금도 비가 오면 옷가지와 유골들이 땅밑에서 올라오기에 주기적으로 수거한다고 한다. 시체 웅덩이였던 장소 곳곳에 과거 누군가의 신체 일부였던 유골들을 모아 둔 것이 보인다.  그 곳도 오디오 서비스가 되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시리아내전, 이슬람국가, 민간인학살, 소년병, 난민들의 탈출
과거는 어쩔수 없다지만 미래도 어쩔수 없다면 스스로가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제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없기를, 무기없이 지켜지는 평화가 오기를

저녁 하루닫기 시간에 아이들의 느낌을 들어 보았다,  7기들의 장점은 공수전환이 빠르다는 거다. 신나게 놀다가도 곧 진지한 이야기에 몰입한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좋을 거다. 좋은 사람으로 크고 있다.
댓글목록

7기선우아빠님의 댓글

평화를 이해하기 위해 평화롭지 않은 곳, 아니 외면하고 싶은 곳을 바라봐야만 하는 진실이 참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바라볼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만 파괴와 증오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유리관 속 신발 한 짝이 가슴저미게 다가오네요... 어떤 이가 신었을까? 그 신발을 신고 즐겁게 뜀박질을 하기도 했겠고 때론 한가로이
개울에 발을 담그고 먼 산을 바라보기도 했겠지요. 아이들의 눈과 여행을 통해 저도 평화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메아리쌤, 감사드리며 한국에 돌아오시면 언제 따뜻한 식사 한 번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시간 꼭 내주세요~ㅎㅎ)

강아지똥님의 댓글

앗, 선우빠
팔 다치신 건 괜찮은지요?
......
따뜻한 식사 한 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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