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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퍼머컬쳐 에세이-<짚 한오라기의 혁명>을 읽고

1,449 2016.12.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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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4 퍼머컬쳐 에세이 발표 정윤서

 

<짚 한오라기의 혁명>을 읽고

올해 2학기에 퍼머컬쳐 세미나를 시작한 이후 자연농법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과 동일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자연 농법은 무농약은 물론 여태껏 농사의 기본이라고 여겼던 과정들이 전부 쓸모없다고 말하는 충격적인 농법이었다. 인간의 기술과 노동 따위가 없어도 자연이 알아서 양식을 내어준다는 것을 일깨우는 농법으로 농법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노동이 적게 든다. 땅의 힘만으로 작물을 키워내는 자연 농법에는 크게 네 가지 원칙이 있는데 바로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 무경운이다. 무농약과 무비료는 그렇다 치더라고 무제초, 무경운 등 농사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었던 것들 앞에 죄다 ()’자가 붙으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농법의 원칙을 지키며 약 10년간 땅의 힘을 길러주면 그 이후에는 생산 과잉이 일어날 정도로 작물이 잘 자란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자연의 상태를 결여의 상태로 인식하고 땅을 손보고 비료 등을 투여하는 지금의 관행농법은 자연에 병주고 약주고하는 식이라고. 알아서 두면 자연이 다 키워 줄 일인데 바보같이 자연을 망가뜨려놓은 후 자연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약을 왕창 쏟아 붇는다. 이러한 방식의 농법은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산업혁명이후 인간의 주거환경과 먹거리가 자연에서 멀어진 동시에 인간은 자연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책에서도 나왔듯 굳이 씨를 뿌리지 않더라도 자연에는 우리의 먹거리가 널려있다. 산나물의 종류만 해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불신하며 굉장히 제한적인 먹거리를 먹는다.

얼마 전 제주도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신기한 것을 보았다. ‘숨비라는 해변 덤불의 열매인데 숨비잠수하다의 어원으로 잠수로 인한 두통에 뛰어난 효과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루 몇 시간 씩 바다 속에서 물질을 하시는 해녀분들은 숨비로 차를 끓여먹고 그 씨를 베갯속으로 채워 주무시기도 한다. 두통약을 사러 약국에 갈 필요 없이 자연은 해녀 분들의 일터에 풍성한 약재를 준 셈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경이롭다. 우리를 보살피는 어머니 자연의 푸근함을 느낀다. 그 날 저녁 메아리 샘이 끓여주신 숨비차를 맛보았다. 약간 쌉쌀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감도는 게 기분 좋았다. 체질과 계절에 맞는 음식과 자연에 있는 약초를 먹음으로써 여러 질병들에 커다란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자연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인간이 만들어낸 각종 약재에 기댈 수밖에 없다. 문득 자연식에 대한 공부를 하며 산나물과 약초에 대해 탐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무궁무진한 먹거리들이 많을까!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잡초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애초에 모든 풀은 저마다의 이름과 특색이 있는데 그것을 잡초라고 뭉뚱그려 표현해 버리는 건 인간의 표현법이다. 자연농법에서는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일컫는 풀들과 작물의 공생을 방해하지 않는다. 섞어짓기, 돌려짓기, 사이짓기를 통해 작물이 다양한 풀들과 어울리며 보다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유도한다. 그 예로 저자가 가꾸던 과수원의 생김새를 들여다보자. 그는 귤 밭에 아카시아나무와 클로버, 자주 개자리 등의 풀을 함께 심었다. 아카시아는 토양 개량을 위해 심은 나무인데 이 나무에서 진딧물이 끼자 진딧물을 잡아먹는 익충인 무당벌레가 번식하여 진디를 다 먹어치운 후 귤나무로 옮겨가 귤나무의 천적을 먹어치운다. 뿌리에 있는 균은 자연 비료를 공급해주는 한편 방풍림과 방충림의 역할도 한다. 클로버와 자주개자리 같은 풀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결국 자연농법 과수원은 비료목인 아카시아가 쭉쭉 서있고, 과일나무 아래에는 풋거름풀이나 잡초가 자라고, 그 속에 야생 상태로 기르는 채소가 무성하며, 거기에 닭이 놀고 있는 매우 입체저인 농원이 되는 것입니다(83)’

 

지난여름, 흡사 정글을 연상시키던 학교 텃밭을 떠올려 본다. 3기가 총 출동하여 학교 수돗가에서부터 호스를 연결해 힘들게 물을 줬는데 작물 위로 무성히 우거진 잡초들이 물을 다 빨아먹는 것 같아 여간 힘이 빠지는 게 아니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생강샘은 도대체 왜 잡초를 뽑지 않으실까..? 저 애들만 없다면 물을 이렇게 많이 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불이학교에 와서 처음 접한 자연농 밭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실제로 저자는 동네 농부들에게 몇 십년간 미친놈소리를 들으며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기존의 농부들이 보기에 마사노부의 농사법은 농사가 아닌 방임에 가까웠으리라. 농사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며 인간들이 그들의 지혜를 사용하여 거친 자연을 농사에 적합한 환경으로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니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취할 먹거리의 항목을 정하고 그것의 성장에 일부분 관여할 뿐 실제로 농사를 지어 우리에게 양식을 내어주는 주인공은 자연이라는 사실은 잊힌 지 오래가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자연농법은 어느 시대가 오든 항상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원점인 동시에 가장 발전된 형태의 농업이라고. 따라서 모든 농법은 자연농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농부들이 살기 어려운 나라에서 자연농법이 퍼지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정부가 농업에 대한 지원은커녕 식량 자급률조차 보호해주지 않는 마당에 관행농법에서 자연농법으로 전환할 농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자연농법으로 수익을 얻으려면 최소 10년 동안은 미비한 수입을 얻으며 땅의 힘을 기르는 데만 주력해야하는데.

우리나라의 유기농산물은 대다수의 관행농법으로 생산된 식품보다 가격이 비싸다. 보다 자연농과 가까운 방식으로 농사지은 식품의 가격이 이것저것 비싼 것을 땅에 쏟아 붇고 비싼 기계로 땅을 갈며 일을 한 작물보다 비싸다는 건 모순처럼 느껴진다. 노력의 덜 들어간 만큼 더 싸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소비자 측에서 몸에도 좋으면서 외관도 좋은 농산물을 요구하면 가격이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가격이 관행농법으로 한 작물보다 비쌀 이유는 1도 없지 않은가. ‘, 살림을 디자인하다에서 나온 것처럼 국내 유기농식품 유통매장의 농산물들은 비료와 농약을 잔뜩 뿌린 농산물들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외관이 좋다. 자연농을 하면 농약을 친 것보다 벌레 먹은 것, 흠집 생긴 것이 많기 마련인데 그 중에서도 소비자의 눈에 맞추어 외관 좋은 것만을 선별한 것이다.

짚 한오라기의 혁명의 주인공은 농부들이 아니다. 그 혁명의 불씨는 전 인류가 갖고 있으며 그 불씨를 모아 비로소 커다란 혁명의 불을 지필 수 있다. 저자는 국민 모두가 농부인 세상이야말로 정의로운 세상일 것이라 말한다. 국민 모두가 농부가 되기는 어렵다 하더라고 국민 모두가 농사에 관심을 갖는 세상을 꿈꾸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책을 읽는 과정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기존 농업의 실상을 보며 놀랐고, 내 삶이 자연과 얼마나 동 떨어진 삶인지 알게 되어 놀랐다. 무엇보다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이 무언가 많이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얼마 전에 본 영화 <리틀포레스트>가 떠오른다. 한 소녀가 시골마을에서 자급자족하는 일상을 그린 영화로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짓고, 요리하고, 밥 먹는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주인공 소녀는 직접 키운 농작물로 요리를 하여 정성을 다해 스스로를 대접한다’. 소녀의 삶에는 요즘 사람들에게선 찾아 볼 수 없는 여유로움이 느껴졌고,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여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장면에서는 인간의 존엄함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힐링을 받았다 표현한다. 농사짓고 요리하고 먹는 일상의 반복을 보여주는 이 영화를 보고 힐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삶의 근간인 먹거리에 대한 자유와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고 먹거리를 마트에서 손쉽게 구하다보니 그 귀중함의 가치가 낮고 그만큼 맛도 덜하다. 또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갖가지 농약과 gmo식품에 노출되어있다.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대접 한다기 보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나의 삶과 직결된 먹거리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입에 들어가는 양식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내게 왔는지에 대해 무지하며, 이 세상에 먹거리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무지하다. 제철음식이 무엇인지, 그 맛이 어떠한지 알 턱이 없고 혀를 마비시키는 자극적인 착향제에 길들여져 자연 본연의 맛에 무디다. 나에 대해 무지하고 싶지 않아 공부를 한다고 말하면서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라는 사실만큼 웃픈사실은 없는 것 같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무위자연을 역설하며 인간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그것의 소산인 과학을 일체 부정한다. 지혜와 합리, 이론의 세례를 넘어선 무분별 지혜를 강조하는 그는 음양의 도를 지키며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 역시 훌륭한 삶이지만, 최고의 삶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자연과 하나 되어 무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말한다. 어렵다. 그건 언어로 포획할 수 없는 경지인 것이 분명하다. 저자는 지혜와 지식을 뛰어넘은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역설적으로 지혜로워지고 또 지혜로워지라는 이야기, 즉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을까. 물론 이론의 축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직접 행동에 옮기는 실천적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당장 자연농법 농사를 짓지는 않더라도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책임감 있는 소비가 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향한 강렬한 욕구가 불타오르는 요즘, 언젠가 귀농을 하여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겠노라는 버킷리스트를 하나 추가해 본다. 국민 모두가 농부가 되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서는 아직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지만 일단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무지하지 아니하고 내 한 몸 내가 책임지는, 스스로에게 정의로워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댓글목록

생강님의 댓글

여기 맞습니다.
첨부파일도 하고 내용도 본문에 올려주면 좋을 것 같아
영상은 올해 내는 마무리 해야 하는거 아냐?? ㅎㅎ

정서님의 댓글

수정했습니다!ㅎㅎ
 여, 영상... 음 그러게유...ㅜㅜ 최대한 빨리 만들도록 하겠습니닷!!

생강님의 댓글

수정해줘서 고마워 ^^
영상은 기대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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