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

[인간없는 세상]

2,581 2012.08.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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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남는 것이라곤 우주 공간으로 퍼져가는
전자 신호 정도일 뿐.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원제 ‘The World Without Us’)이 매력적인 건 이 도발적인 상상력 탓이다. 하지만 ‘기발한 상상’에 그쳤을 질문을 인류에게 던지는 ‘묵직한 울림’으로 바꿔놓은 것은 다양한 시공간과 학문을 넘나드는 저자의 꼼꼼한 취재와 열정, 명징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 그리고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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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인류와 함께 없어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남길 유산은 무엇인가. 책은 이 같은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 떠난 지적 모험이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수, 키프로스섬 바로샤, 하와이 킹맨 환초(環礁), 한국의 비무장지대 등 세계 곳곳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진화생물학자·지질학자·고고학자·박물관큐레이터·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저자가 그려낸 ‘인간 없는 세상’의 연대기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곰팡이가 벽을 갉아먹고, 빗물은 못을 녹슬게 하고 나무를 썩게 한다. 우리가 살던 집들은 50년이면 대부분 허물어진다. 인간이 사라진 이틀 뒤면 습지와 강을 메워 만든 도시 뉴욕의 지하철은 물에 잠길 것이다. 20년 후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이 시대 최고의 토목공사”라고 말한 파나마 운하는 막혀버리고 남북 아메리카는 다시 합쳐진다. 300년 후 세계 곳곳의 댐들이 무너지고, 삼각주 유역에 세워진 휴스턴 같은 도시들은 물에 씻겨나가 버린다. 1000년 후 인간이 남긴 인공구조물 가운데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영불해협의 해저터널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또다른 ‘유산’들이 있다. 인간세상이 18세기부터 과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려면 10만년이 걸린다. 태평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데는 몇 천년, 몇 만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납이 토양에서 전부 씻겨나가려면 3만5000년, 크롬은 그 두 배의 기간이 소요된다. 인류가 남긴 약 3만개의 핵폭탄의 플루토늄이 자연 상태의 배경 복사 수준이 되려면 25만년쯤 걸린다. 그러고도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441개의 핵발전소와 싸워야 한다.

결국 저자가 미래의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가정을 통해 되새기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의 ‘인간 있는 세상’이다.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아프게 드러나는 건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와 다른 생명체들에게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가라는 사실이다. 한 이론에 따르면 인류가 신대륙에 도착할 때마다 마주친 동물들은 전멸당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킬러 본능’만이 아니라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의 본능’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다른 존재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치명적으로 박탈해버리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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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면 인간이 사라진다고 세상이 안타까워할까?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을까. 저자는 인간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생물이라곤 이, 진드기, 바퀴벌레, 쥐같이 인간에 기대 살았던 동물들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사라지면 오히려 수많은 생명체가 지구상에 번성할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뜨끔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독자들의 두려움만을 키우는 종말론적 계시록은 아니다. 저자는 답사의 중간중간 상처 입은 지구의 경이로운 치유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생명의 요람인 바다는 인류가 하늘에다 뿜어낸 탄소를 흡수하고 있고, 핵발전소 사고로 오염된 체르노빌에서도 생명은 왕성히 살아나고 있다. 저자는 특히 동족이 원수가 되어 싸우던 지옥에서 수많은 생물들로 넘쳐나는 천국으로 변한 비무장지대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비무장지대 방문 경험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화해하게 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했다”라고 밝혔다.

저자는 인류가 지구를 파괴하면서까지 부여잡으려고 애쓴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묻는다. 뭇 생명체들이 그러하듯 인간이라는 생물종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 뒤 영원히 남는 것이라곤 우주 공간으로 퍼져가는 전자 신호 정도일 뿐. “창공은 영원히 푸르고,/ 대지는 장구히 변치 않으며 봄에 꽃을 피운다./ 그러하나 사람아,/ 그대는 대체 얼마나 살려나”라는 이백의 시가 울림을 갖는 건 이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영리한 책’이다. 환경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해 지적 자극과 재미를 동시에 준다. ‘인간 없는 세상’을 상상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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