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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학교를 그만둔 최수연학생이 불이학교로 편지를 보냈어요

2,750 2012.08.2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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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학교를 그만둔 내가 불이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하고픈 말.
 
 
글 최수연 (불이학교1기)
 
 
음, 일단 존댓말을 해야할까, 반말을 해야할까, 아니면 그냥 말하는 대화체가 아닌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써야할까 잠시 망설였다. 그 중에서 고른 건 후자였다. 후자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가장 편한 것이 이유고, 만약 내 이런 말투가 기분이 나쁘다면 사과의 말을 드리고 싶다. 지금 이 구절만 읽고 재수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덮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읽기 전에 혹시 누가 읽으라고 해서 억지로 읽는다면 더 더욱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냥 읽었다고 뻥치고 덮어도 나는 괜찮다. 필자는, 독자를 위해서 글을 써야하는 것이니까.
 
나에 대해서 모를 3기들을 위해 매우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난 불이학교를 1년 반 정도 다니고 그만 둔 1기 최수연이다. 언제부터인지 이름 모를 어떤 누나, 언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들락날락거리는 그 사람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2, 3개월 전 산적쌤의 부탁으로 글을 썼다. 사실 난 아직도 산적쌤의 취지가 정확히 먼지 모르겠다. 갑자기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고는 ‘수연아, 연수야. 혹시 학교 후배들에게 불이학교를 나간 입장에서 쓰고 싶은 글들 써줄 수 있어? 아무런 형식 없이 그냥 자유롭게 쓰면 돼.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등등. 길게 쓸 필요 없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음에 들었던 나는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당연히 쓸 의향이 없었다. 별로 학교를 나가서 내가 정말 잘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간 내가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쓸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건, 3개월 사이에 내 생각이 변환됐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를 나간 이유는 꽤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나간 이유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겠다. 산적쌤은 분명 이런 것들을 줄줄이 늘여놓는 걸 바라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앞으로 내가 얘기를 쓸 이야기는 무엇이냐, 딱 두 가지를 말할 것이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 생활이 나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얘기하려고 한다.
 
첫 번째,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사실 쓸 말이 꽤나 많다. 학교를 그만두고 벌써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 9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난 요약하기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얘기를 나눠보겠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꿈이 연극배우다. 과거에도 그랬고 아직까지도 그렇다. 그런 꿈을 가진 건 지난연도 이 맘(8월 말)쯤이었다.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많은 직업들을 해보고 싶은데, 배우를 통해서 그 많은 역할들을 할 수 있고 또 TV에 출연하는 나보다 큰 극장이든 작은 극장에서 관객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의 연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에요’라고. 하지만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이건 다 거짓말이다.(여태까지 이런 답변을 했던 사람들에게 사과를 전한다.) 다 입에 발린 말들이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 없이 그냥 멋있어 보였다. 그 당시 내가 연극을 본 것도 아니었고, 배우를 만나본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뜬금없이 너무 멋있어보였다. 무대에 서서 관객들이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나는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연기를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는 잠깐 얘기를 뒤로하고, 그래서 난 무작정 딱 한 번 뵈었던 극장대표님을 만났다. 연기하고 싶다고. 연기 안 해도 좋으니까 극장 청소라도, 잡일이라도 해달라고. 대표님은 흔쾌히 허락하셨고, 나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을 극장에서 보낼 수 있었다. 나의 꿈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심지어 프로들이 하는 극에 나는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여태까지 했던 조명이나 음향이 아닌 배우로 말이었다. 하지만 그 황금 같은 제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엄마의 반대였다. 그 일로 엄마랑 많이 싸웠다. 그거 할 시간에 책이나 읽으라는 엄마의 말은 그 때 당시 나에게 큰 상처였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선택을 하게 해준 엄마에게 무지 감사하다. 물론 내가 그 역을 맡았다면, 나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로써 불렸을 것이고, 실제 프로배우들과 같이 얘기도 하면서 내 꿈에 많이 다가갔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좋지 않다는 걸, 경험하지 않아도 나는 느낄 수 있다. 만약 내가 그 역을 맡았다면, 나는 분명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매일 아침 대학로에 나가야 했을 것이고, 나의 자유도,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사회에 발을 들이면서 너무 일찍부터 사회를 경험하고, 내 또래에 하지 못할 일들을 많이 겪을 것이다.
 
좋은 것도 있겠지만 나쁜 것도 무지 많을 것이다. 그럼 나는 그 일을 포기하고 무엇을 했냐면, 공부했다. 그 때 당시에 대학로에서 연기를 하지 못한 설움에 나는 예고를 가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사실 지금 따지고 보면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4월까지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도서관가서 문제집 풀고, 인강 듣고 반은 쿠팡에서 아이쇼핑하고 인터넷 서핑했다. 검정고시는 쉬워서 그렇게 공부했더니 고득점을 받으며 내가 가고 싶었던 예고 점수 커트라인에 맞았다. 미친 듯이 기뻤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예고를 갈 수 있다는 게. 그 점수를 맞고 이후에 예고를 가기 위해서 준비할 연기실습은 대학로에서 아는 오빠가 연기를 가르쳐 주겠다며 원래는 8월 달부터 예고 실기연습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쯤 실기 연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난, 보다시피 쉬고 있고 그 말은 즉, 난 예고를 포기했다. 그 때 예고를 포기할 땐 허무했다. 오직 예고를 위해 검정고시 공부를 했고 아는 언니가 선물로 준 연기 책을 읽으며 연기 연습을 했으니까.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연극과 연기를 포기한 건 내가 9개월 동안 혼자 있으면서 느낀 것들 때문이었다. 그것들이 두 가지 중에 마지막에 포함되는 말인데, 두 번째로 잠깐 넘어가기 전에 나는 딱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겠다. 나는 4월 검정고시를 끝나고 뭐 했냐면, 아무것도 안했다. 놀았다.
 
두 번째, 이런 놀고 싸기만 하는 그런 9개월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이다. 처음에, 한 번도 이런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나를 한심하게 봤다. 나는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 자신이 지칠 때, 피곤할 때까지 하루를 보내야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야 정말 뿌듯했다. 살이 찌면 내 자신을 끔찍하게 혐오했고(이건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예전만큼은 그렇진 않다.), 하루를 빈둥빈둥 지내는 날이라면 혼자 우울해져서 정말 우울증환자처럼 멍청하게 침대에 앉아 내 자신을 비난했다. 반성이 아닌 비난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한가롭지만 다른 사람들은 바빴다. 내가 나를 싫어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지내는데 너는 왜 바보같이 이렇게 한심하게만 지내고 있냐. 이러려고 홈스쿨링 했냐?’ 이런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정말 좋았던 건,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혼자서 밥도 잘 못 먹고, 혼자서 영화관도 못가고, 혼자서 여가생활을 거의 잘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누구랑 같이 다니면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다니면서 같은 거리여도 새로운 것을 많이 볼 수가 있고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랑 다니면 얘는 싫은데 나는 좋고 하는 의견차이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 편한 점들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뽑자면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썼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아, 오늘은 나에 대해서 좀 고민 좀 해볼까~?’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은연중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있으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나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인 고등학교와 진로 문제에 대한 고민들을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고민들은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과 말하면서 조언을 들을 순 있지만, 나는 내가 혼자서 많은 고민을 할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착한사람 콤플렉스’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은 7가지의 콤플렉스를 적어둔 것인데, 그 중에서 다른 것들은 다 이해가가도 이해가 가지 않는 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조언을 해주려고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 구절은 읽어도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중간에 읽다가 넘겼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 구절이 이해가 간다. 조언을 해주려고 하는 건, 다른 사람이 그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조언을 받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는 인생에서 꼭 한 번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한심하게 생각했던 9개월이, 지금은 정말로 귀중한 시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 16살을 보냈던 이 2012년도를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행복하게. 나는 불이학교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은 단 한마디가 있다면, 딱 한 번이라도 혼자서 놀아봤으면 좋겠다. 친구들이랑 놀았던 것처럼. 남자 애들들은 친구들이랑 같이 만나서 게임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PC방도 가보고, 영화도 혼자 가보는 시간을 갖고, 여자 애들도 마찬가지로 혼자 영화도 봐보고 밥도 혼자 같이 먹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상상만 해도 너무 외롭지 아니한가. 나도 맨날 혼자 있는 시간이 있다고 너무 행복한 건 아니다. 너무 외로워 미치겠다. 가끔은 ‘맨날 혼자 지내다보면 나중에 남 생각 안 하고 행동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한다. 하지만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하자. 청춘은 지금이니까!
댓글목록

철흠부님의 댓글

글 잘 봤어요 ^^
수연이 화이팅!!!

ㅇㅅ님의 댓글

ㅇㅅ 이름으로 검색 2012.08.22 16:43

화이팅!!!!

나경님의 댓글

멋있다!!

철흠모님의 댓글

이런 글 쓰기 참 어려운데,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 더 자유로와진 모습이네 ...

장예진님의 댓글

글잘썼다~~

소영님의 댓글

오오오!진짜 잘썼다!!

희상모님의 댓글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네요.^^  스스로에게 솔직한 글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박희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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