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작년 졸업한 주희가 편지를 보냈어요.

1,802 2015.02.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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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는 2014년 2월에 졸업한 불이학교 1기 여학생입니다.

그간 느꼈을 감정들과 감사함을 담아 편지를 보냈더라고요.

불이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주희 허락을 받고) 여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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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안 오고 시간도 많기에! 

신기하게도 내가 몇 년 전을 그리워 할 때많은 친구들에게 자신 또한 그렇다는 말을 듣게 된다여기서 그리워 한다는 건 막연히 만우절 장난길거리 공연 연습운동회인도 때의 재밌었던 일보다는 그 시절의 패기와 솔직했던 감정들을 말한다이렇게 말하니까 엄청 오래 산 사람으로 보일수도 있겠다만아무튼 그 때의 우리는 모두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할 얘기가 뭐가 그렇게 많은지 잠들 때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다가 일주일 만에 요금을 다 써버리기도 했으며지금 생각하면 정말 사소한 일로 세상이 끝날 것처럼 안절부절 못 하기도 했다조금이라도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일을 참지 못해 화를 냈고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답이 안 나오는 주제를 가지고 몇 시간을 토론했다한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다 누군가가 어차피 같은 얘기 반복이다결과적으로 답이 안 나온다!’ 라는 말을 던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결과보단 이 과정이 중요한 거다!’ 라며 반박하고대략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1내가 만났던 작은 사회는 매서웠고빨랐다낮선 환경에서 나는 ?’ 라는 의문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고내가 몇 년 동안 배웠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하루하루가 불편했고몸은 점점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낮선 환경에 적응해갔다작은 사회는 여전히 매섭고 빨랐지만 익숙한 곳이 되어있었으며심지어 편안함을 느끼기까지 했다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큰 실망을 했다결국한참을 혼란스러워하다 나는 마음을 비웠다아니고민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휘둘리지만 말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그 생각이 옳은 건지 모르겠다결과적으로 공부에는 도움이 됐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라니듣기만 해도 힘이 빠지는 말이 아닌가이런 힘이 빠지는 생각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고당연한 일들을 시도조차 못 하게 만드는 작은 사회가 원망스러웠다그리고 왜 대안교육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조금은 확실히 알게 되었고대안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작은 사회 속에서 내 기준을 세워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내 입으로 말하기 정~말 부끄럽지만!! 조금 더 성장한 느낌이 들어서 뿌듯했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의 패기와 감정들이 그립다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슬퍼하기도 한다지난 4년 동안 나는 너무나 큰 선물을 받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앞으로 학교를 졸업하게 될 후배들도 나와 같은 뿌듯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끝으로 학교와 인연을 맺게 해주신 부모님그리고 모든 학교 사람들에게 늦은 감사 인사를 보낸다.

댓글목록

밥풀님의 댓글

예전 어느 책에선가 읽은 구절이 생각나네오..
대안교육 하셨던 그 분이 말씀하시길...자신의 교육 실패, 성공여부는 얼마나 졸업생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거나 마을로 돌아오거나
하는 건데, 그 점에서 실패한거 같다는..뭐 그런 얘기였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참 중요한 거 같습니다. 연어처럼, 우리 아이들이 잘 커서 사회생활도 하다가 다시 불이학교에서 선생님도 하고,
교장선생님도 하고, 불이마을에서 삶터를 일구어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참 이상적일거 같네요.
이민을 가고, 대도시로 가고....그렇게 사람을 떠나보내는 곳은 실패한 곳이겠죠..
이제 불이학교도 시작이니, 잘 되었음 좋겠네요.
주희 홧팅~

오리발님의 댓글

졸업한 학생의 편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하고 기쁘네요.  불이를 잊지 않고 솔직하게 편지를 보내줘서 넘 고마워요.  비록 평소에 표현은 못하고 누가누군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먼 발치에서나마 같은 불이의 학부모로써 늘 응원하고 있을께요.  부디 잘 지내고 자주 놀러와요~~

여울님의 댓글

주희 편지 고마워~~ 후배들에게도 좋은 편지일거라 생각이 들어~
언제나 응원하고 있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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