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배움터이야기

티벳 독립운동가 인터뷰 - 9/28

915 2016.10.0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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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독립운동가 인터뷰


우선 모두에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지금 다른 NGO 미팅이 있지만 청소년들을 만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왔다. 이랗게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니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티벳의 시골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셨다. 하지만 중국이 티벳으로 왔을때 공무원이라는 집과 땅 잔 모든 것늘 빼앗기며 힘들게 살수 밖에 없었다.
신발이 없었지만 양말은 있었기에 감사하며 학교에 다녔다.  중등학교 부터는 돈이 없어서 공부도 할 수 없었다. 이후에는 절에 들어가 스님들에게 티벳어를 배우며 공부를 했다.

중국 사람들니 티벳사람들을 향한 정책은 5년 마다 바뀌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불교가 없어져야 한다는 정책에 절이 없어지고
티벳사람들이 장사를 할 스 있도록 허가했지만. 이갓은 티벳의 자원을 빼가기 위한 통로로 사용한다. 하지반 모든 이익은 중국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현재 나무를 전부 잘라가고 유목민들이 살수 있는 환경이 사라져 버리는 자연파괴가 심각한 상황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니 너무 힘들어 대모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청소년이 되면서 대모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생겼고 6명의 친구들과 대모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100여명의 중국 군인들니 나타났다. 우리는 몇번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모두 끌려갈 스 밖에 없었다.

우리는 경찰서에 잡혀가서 계속 사람이 바꿔가면서 하루 종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티벳 아저씨가 경찰들과 일하면서 잡혀온 사람들을 때리는 장면을 보며 분노한 마음에 맞는 것이 아프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다리가 부러지고 곳곳에 멍이 들어서 눔직닐 스 조차 없었다. 몇일을 구타를 당하고 다음으로 격은 일은 밥이나 물도 공그빧지 못한체 독방에 일주일동인 갇혀있던 것이다. 어땋게 되가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지도 맥하는 상황에서 닫혀있는건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 속에서 몸은 마음 먹은데로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중국인들에게 스럾이 맞았음에도 내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과 중국을 향한 분노로 맞는것이 아프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니는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일주일간 감옥에서 있는 후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이곳 벽에는 큰 종이가 붙어있었다 그솟에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맹세였고. 이갓을 하면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읽지 않기로 결심했다.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내가 하는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거짓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저항했다. 중국군인들은 더욱 강하게 때리고 고문을 했지만 나는 죽을 각오를 했기때문에 견딜시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운이 좋있다. 다행히 그곳의 책임자가 삼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몇년이나 있었지만 나는 삼개월만에 나왔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3년 6년 15년이나 지내고 나왔다 하지만 몇몇은 아직까지 소식을 모른다. 아마도 죽었을 것이라 모두들 생각하고 있다

나는 감옥에 나와서 다시 대모히라 나갔다. 그러나 당일 잡혀서 다시 감옥으로 갔지만 삼춘덕에 다음날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너무 심한 린치를 당해서 아직도 얼글 근육을 움직이기 쉽지 않고 가끔 피를 토하기도한다. 그날 저녁 어두운 방에 물을 계솓 떨어트리면서 상처에 자극을 줘서 밤세도록 쉬지못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둘었다.


나는 지금 인도에 살고있다. 가끔 그때의 일들을 생각하면 재미있었다느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조 생각하는건 내가 그런 힘든 일을 당했지만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티벡 아저씨나 중국군인즐 드리고 중국인들에 대해서 용서하고 있어서 마음이 편하게 살고 있다.




질의 응답

쉽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나?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용서가 됬다. 이건 내가 불교를 믿고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변화를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희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분노가 사라지는 것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후에 어떻게 상황이 변하게 될지 모른다.
나의 다리는 가족들 마저 보는 것을 혐오스럽고 무서워한다. 하지만 이런 육체적 상처는 남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사라졌다.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았나?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다. 감옥에 있을때 부모님이 만나러 왔다. 9명의 자녀중  너가 이런 선택을 한것은 잘못된것이라 이야기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아픈 어머니가 와서 하는 말은 너가 자랑스럽다는 것이었다.
삼춘은 나에게 도와주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잘 자랐다 시대를 잘 못 만난거다. 나때무문에 직장을 잃은 삼춘은 오히려 밥을 사주시며 나를 응원해 주셨다.



우리는 앞으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티벳에서 도망나왔을때 그들의 적응과 치료를 돕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는 티벳에서 3년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직장을 갖을 스 없고 비즈니스도 할 스 없다.
감옥에서는 어떤군인이 음식을 던져주는 경우도 있었고, 나와서는 돈을 던져주거나 몰래 당신을 존경하다는 메시지릉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족들까지 모둔 경제활동을 막어버리기 때문에 삶는 쉽지 않다. 특히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나온 사람들은 치료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티벳에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는 잘 못된 일을 하지 않았다. 올바른 일을 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의 후대에게 얼마나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는지가 전해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 학생이니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공부밖에 없다. 그리고 기억해달라. 이후에 어른이 되어까지 기억했다면 행동해 달라.


학생이라는 신분을 정확한 이해로 삶을 살아가라ㅡ

 

댓글목록

진아진효맘님의 댓글

저도 학생들이 잊지 않고 커서 뭔가를 해낼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장민석님의 댓글

정말 좋은 맥간이였네요

기라름님의 댓글

맥간은 최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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